이브라힘의 가족은 성명을 통해 이브라힘이 지난 15일 독일 바이에른주 프린 암 킴제에서 짧은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났다고 밝혔다. 가족들은 이브라힘의 마지막을 곁에서 지켰다. 파트너 마리나 우마리 박사는 "그는 마음속에 남아공과 그 국민을 품은 채 평화롭게 세상을 떠났다"며 "어디에 있든 조국을 향한 사랑이 흔들린 적이 없었다"고 말했다.

그가 세계 재즈 무대에 이름을 알린 계기는 1960년대에 찾아왔다. 이브라힘은 1959년 트럼펫 연주자 휴 마세켈라 등과 함께 밴드 '재즈 에피슬스'를 결성했다. 이 밴드는 1960년 남아공 흑인 연주자로만 구성된 최초의 재즈 음반을 녹음했다. 이후 유럽으로 건너간 이브라힘은 1963년 성악가 사티마 베아 벤저민의 소개로 듀크 엘링턴을 만났다.
엘링턴은 이브라힘의 음악을 세계 무대로 이끌었다. 엘링턴은 그의 음반 '듀크 엘링턴 프레젠츠 더 달러 브랜드 트리오'를 제작했다. 1965년에는 뉴포트 재즈 페스티벌 출연도 주선했다. 이브라힘은 1968년 이슬람으로 개종한 뒤 압둘라 이브라힘이라는 이름을 사용했다.
이브라힘의 음악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작품으로는 1974년 녹음한 '마넨버그'가 꼽힌다. 이 곡은 케이프타운의 마을 이름에서 제목을 따왔다. 이곳은 아파르트헤이트 정권의 강제 이주 정책으로 흑인들이 밀려나 정착해야 했던 지역이었다. 14분짜리 이 곡은 단 한 번의 즉흥 연주로 완성됐다.
'마넨버그'에는 가사가 없었다. 그러나 남아공 사람들은 이 곡을 저항의 노래로 받아들였다. 아파르트헤이트 말기 '마넨버그'는 남아공의 비공식 저항가처럼 퍼졌다. 1976년 소웨토 항쟁 이후 이브라힘은 당시 불법 정당이던 아프리카민족회의를 위한 비밀 자선 공연을 열었다. 이후 뉴욕으로 돌아가 활동을 이어갔다.
넬슨 만델라와의 인연도 깊었다. 이브라힘은 1990년 독일에서 석방 직후의 만델라를 만났다. 이 만남을 계기로 남아공으로 돌아왔다. 1994년에는 만델라 대통령 취임식에서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함께 연주했다. 이브라힘은 2013년 미국 공영라디오 엔피아르 인터뷰에서 만델라가 자신의 음악을 듣고 "바흐와 베토벤, 우리가 더 낫다"고 말했다고 회고했다.
귀향 뒤에도 이브라힘은 후배 음악인을 위한 활동을 이어갔다. 1999년 케이프타운에 남아공 음악인을 위한 아카데미를 세웠다. 2006년에는 케이프타운재즈오케스트라를 창단했다. 2024년에는 생애 마지막 음반이 된 더블 앨범 '3'를 발표했다.
그의 음악은 세대와 국경을 넘어 이어졌다. 대표곡 '마넨버그'는 최근 조란 맘다니 뉴욕시장 취임식에서도 연주됐다. 남아공의 역사 속에서 태어난 선율이 다른 도시의 정치적 순간에도 울린 셈이다.
앨런 윈데 웨스턴케이프 주지사는 "남아공이 전설을 잃었다"며 "그의 음악은 우리의 독특한 문화적 다양성과 역사를 담고 있었다"고 애도했다. 유족으로는 케이프타운에서 활동하는 피아니스트 아들 차퀘, 뉴욕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래퍼 딸 치디가 있다. 치디는 진 그레이라는 예명으로 활동하고 있다.
넥스트포스트 박해도 전문위원 nextpost0113@gmai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