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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원유 5분의 1이 걸린 좁은 물길의 딜레마

황상욱 기자

입력 2026-08-11 19:17

[넥스트포스트=황상욱 기자] 세계 원유 물동량의 5분의 1이 지나는 호르무즈 해협이 다시 안갯속에 빠졌다. 지난 6월 미국과 이란이 종전 양해각서(MOU)에 서명하며 해협을 통행료 없이 전면 개방하겠다고 발표했지만, 두 달이 지난 지금도 실제 통항량은 전쟁 전의 10분의 1에도 못 미친다. 이란이 최근 미군 철수와 전쟁 배상금 지급 등 6가지 조건을 새로 내걸면서 해협을 둘러싼 긴장은 오히려 다시 고조되는 양상이다.

이번 위기는 지난 2월 28일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을 공습하면서 시작됐다. 106일간 이어진 충돌은 6월 중순 양측이 종전 MOU에 서명하면서 일단 멈춰섰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당시 호르무즈 해협에서 선박 통행이 전면적으로 가능해졌다고 발표했고, 이란은 60일 동안 상업 선박의 안전한 통항을 무상으로 보장하기로 했다. 그러나 이 휴전은 오래가지 못했다. 7월 11일 이란 측이 해협을 지나던 민간 선박을 공격하자 미군이 3차 보복 공습에 나서면서 양국은 다시 전면 충돌 국면으로 되돌아갔다.
/bharatdoc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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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착 상태의 핵심은 이란 내부의 온도차다. 온건파로 분류되는 마수드 페제시키안 대통령은 오만을 중재자로 세워 협상을 이어가고 있다. 이란과 오만은 해협에 새로운 항로를 두는 방안, 즉 페르시아만으로 들어가는 선박은 이란 쪽 항로를, 나가는 선박은 오만 쪽 항로를 쓰는 방식의 합의에 근접했다. 반면 실권을 쥔 혁명수비대와 최고국가안보회의는 훨씬 강경하다. 최고국가안보회의 모하마드 바게르 졸가르드 사무총장은 미군의 완전 철수와 이란에 대한 군사행동 영구 중단, 해상봉쇄 해제, 전쟁 피해 전액 배상, 대이란 제재 해제, 동결 자산 해제라는 6가지 조건을 내걸며 미국이 태도를 바꾸기 전까지는 해협을 열지 않겠다고 선을 그었다. 혁명수비대 측도 해협 재개방이 오만과의 협상과는 무관하며 오직 이란의 조건에 달려 있다고 못박았다.

세계 경제가 느끼는 충격은 작지 않다. 호르무즈 해협은 전 세계 해상 원유 교역량의 약 25%, 액화천연가스(LNG) 교역량의 약 20%가 지나는 길목이다. 해운 데이터업체 케이플러 집계에 따르면 지난주 해협을 통과한 선박은 하루 평균 10여척으로, 전쟁 전 통행량의 10분의 1에도 미치지 못했다. 국제유가는 이런 불확실성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지난 7일 기준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배럴당 78달러 선에서 거래됐고, 최근 한 달 사이에는 배럴당 67달러에서 85달러까지 출렁였다. 시장에서는 협상이 늦어질수록 3분기 평균 유가 전망치를 높여 잡는 분석도 나온다.

해협을 실제로 지나는 선박들은 여전히 공격 위험에 노출돼 있다. 아랍에미리트 국영석유회사 아드녹(ADNOC)은 전쟁 발발 이후 자사 선박 15척이 미사일과 드론 공격을 받았으며, 이번 주에만 3척이 피해를 입어 1명이 숨지고 20명이 다쳤다고 밝혔다. 미국 부통령 JD 밴스는 협상에 일부 진전이 있었다고 언급했지만 최종 결과가 미국의 요구를 충족할지는 불확실하다고 말을 아꼈다.

이란과 오만의 항로 합의가 마무리되더라도 그것만으로 위기가 끝나지는 않을 전망이다. 이란 강경파가 내건 조건에는 미군 철수와 전쟁 배상금처럼 미국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요구가 포함돼 있어, 협상은 앞으로도 상당한 진통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세계 원유 물동량의 5분의 1을 쥔 이 좁은 해협이 언제 정상 궤도로 돌아올지는 여전히 예측하기 어렵다.

넥스트포스트 황상욱 기자 andrew@next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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