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는 24일(현지시간) 이란과 특정 품목을 거래하는 제3국에 2차 제재를 부과하는 내용의 새로운 대이란 제재를 발표했다.
스콧 베선트 미 재무장관은 워싱턴DC 재무부 청사에서 "이란 정권이 선택할 수 있는 모든 옵션을 차단하기 위해 '경제적 왕따 작전'(Operation Economic Outcast)을 개시한다"고 밝혔다.
미국은 디지털 자산과 기술, 금, 항공, 해운 분야에서 이란과 거래하는 다른 국가에도 제재를 적용할 방침이다. 특정 제재 대상과 거래한 제3국까지 관세 등의 제재 대상으로 삼는 이른바 '2차 제재'다.

베선트 장관은 "이란이 석유를 밀수하고 제재를 회피하는 데 사용해 온 모든 거점과 중개자, 네트워크를 파악했다"며 "모든 잠재적 수입원을 차단할 것"이라고 말했다. 제재 회피를 최소화하는 '누출 제로'(zero leakage) 접근도 강조했다.
이번 조치는 미국이 지난 2월28일 시작한 대이란 군사작전 이후에도 핵무기 금지와 호르무즈 해협의 자유로운 통항 등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가운데 나왔다. 미국이 군사적 압박과 함께 이란 경제의 현금 흐름을 끊는 방식으로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는 것이다.
◇해상 봉쇄에 휘발유 부족...테헤란 주유소마다 긴 줄
경제 제재가 강화되는 시점에 이란 내부에서는 이미 연료 부족이 시민 생활을 압박하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25일 테헤란 곳곳의 주유소에서 휘발유를 넣으려는 차량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지난달 14일 미국이 해상 봉쇄를 다시 강화하면서 휘발유 수입이 크게 줄어든 영향이다.
이란은 막대한 원유 매장량을 보유한 산유국이지만 정제시설이 충분하지 않아 휘발유와 경유 등 일부 완제품을 수입한다. 전쟁 초기 정유시설 일부가 손상된 데다 해상 운송까지 제약받으면서 원유를 팔고 필요한 연료를 들여오는 양쪽 통로가 함께 흔들리고 있다.
이란 석유부 산하 에너지최적화기구에 따르면 하루 휘발유 수요 1억3500만L 가운데 약 1500만L가 부족하다. 전쟁 재확산이나 가격 인상을 우려한 시민들이 미리 주유에 나서면서 수급 불안도 커졌다. 테헤란 일부 주유소에서는 1회 주유량이 20L로 제한된 것으로 전해졌다.
◇'빵과 연료' 건드리기 어려운 이란 정권
연료난은 이란 정부에 경제 문제 이상의 부담이다. 연료 가격이 과거 여러 차례 대규모 사회 불안의 도화선이 됐기 때문이다.
2007년 정부가 배급제를 도입했을 당시 시민들의 반발이 주유소 방화로 번졌고, 2019년에는 연료 가격 인상이 전국적인 반정부 시위로 확산됐다. 이달에도 남부 케르만주에서 정유 원가 수준의 고급휘발유 판매를 시도했다가 몇 시간 만에 중단했다. 정부가 지난 24일 유류 배급량 축소를 예고하면서 가격 인상 우려도 다시 커지고 있다.
이란 정부는 휘발유 가격을 낮게 유지하기 위해 막대한 보조금을 투입하고 있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보조금 적용 단계에 따라 휘발유 가격은 L당 1만5000~5만리알 수준이다. 리알화 가치 하락까지 감안하면 외화 환산 가격은 10~36원에 불과하다.
마수드 페제시키안 이란 대통령도 시장가격보다 훨씬 낮은 연료 공급이 식량과 노동자 지원에 사용할 재정을 압박한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전쟁으로 물가가 오른 상황에서 연료 가격까지 손대면 민심이 급격히 악화할 수 있어 선택지가 좁다. 이란 정부가 주식인 '넌'과 함께 연료 가격에 민감하게 대응하는 이유다.
◇중국까지 겨냥할까...2차 제재 실효성도 변수
새 제재의 또 다른 관전 포인트는 이란의 최대 교역 상대인 중국이다. 베선트 장관은 이번 조치에 중국이 명시적으로 포함되지 않았다는 질문에 중국을 직접 거론하지 않으면서도 "누구도 미국의 제재 손길을 벗어날 수 없다"고 말했다.
실제 2차 제재가 이란과 거래하는 제3국 기업과 금융기관까지 얼마나 폭넓게 적용되느냐에 따라 제재의 강도와 국제 에너지시장에 미치는 영향도 달라질 수 있다.
미국의 전략은 결국 이란이 원유를 판매하고 대금을 이동시키며 필요한 물자를 조달하는 전 과정을 좁히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문제는 그 충격이 이란 정권에만 머물지 않는다는 점이다. 해상 봉쇄와 거래 제재가 장기화하면 중동의 원유·정제유 공급망에도 부담이 커질 수 있다.
전쟁 6개월을 넘긴 이란은 이제 군사 충돌과 해상 봉쇄, 연료난에 더해 제3국 거래까지 겨냥한 경제 제재를 동시에 견뎌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미국의 '누출 제로' 압박이 이란의 정책 변화를 끌어낼지, 아니면 연료와 물가를 둘러싼 내부 민생 부담을 먼저 키울지가 향후 이란 정국과 중동 에너지시장의 주요 변수가 될 전망이다.
넥스트포스트 이종균 기자 jay@nextpost.co.kr




